2013년 1월 30일 수요일

4. 내 생각


 4. 내 생각

우리의 손으로 쓰여 졌다는 고구려의 〈유기 留記〉와〈신집 新集〉, 백제의〈서기 書記〉, 신라의 〈국사 國史〉, 가야의 〈가락국기 駕洛國記〉어느 하나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 등만이 간신히 전해져 내려올 뿐이다. 다행히 남아 전해졌다는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는 한단고기(桓檀古記) 조차 위서(僞書) 시비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고사(上古史)에 대한 심각한 사료 부족으로 결국에는 거의 전적으로 중국 측의 사료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고조선시대의 자료는 사기(史記)의 조선열전과 삼국지 위지 동이전 그리고 후한서 등 이 거의 전부라고 할 것이다. 이런 자료라도 남아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그 문명과 문화의 주체가 전혀 아닐뿐더러 그에 대해 무지하다고 할 제3자인 중국인의 입장에서 서술한 자료들에 대해 무작정 신뢰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에 있어서도 북한에 대한 오보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고학 또한 그 자체의 한계가 있을뿐더러 한반도내에서만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한 현 시점에서 깊이 있고 정밀한 연구에는 한계가 없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을 무작정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결국 모든 가능성의 지평(地平)을 열어놓고 그나마 전해오는 신화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얻어지는 해석을 총동원하는 방법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때로는 직관에 의한 방법까지도 허용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설을 구성하고 엄밀히 검증하여 사실을 추구해 나가는 방법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너무도 부족한 사료로 인해 차라리 우리 상고사의 연구범위는 고증학과 고고학 등을 넘어서 언어학과 신화학, 종교학 나아가서 인류학 등으로 더 넓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상고사는 무한한 상상(想像)의 보고인 셈이고, 그나마 지금 남아 전해오는 사료들은 다행스럽게도 그 최소한의 틀은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3. 단군신화의 해석론


3. 단군신화의 해석론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상 등장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관한 것인 만큼 오늘날에는 민족 전체의 국조신화로 여겨지고 있으며 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다. 신화란 원래 당시의 현실 속에서 고대인이 경험한 것을 객관화시켜 형성된 관념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사회적 의식형태의 하나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전하는 신화는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완전한 형태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역사발전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화도 오랜 세월 변천을 거듭하여 내용의 일부가 소멸하기도 하고 첨가되기도 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는 신화의 내용을 허구로 인식하여 〈단군신화〉와 관련된 고조선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견해로부터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를 관점의 차이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1)〈단군신화〉의 생성과정과 주인공에 관한 학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견해이다. 중앙아시아로부터 한반도와 일본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사상 중심의 신앙과 사회조직을 가지는 종족들이 백산(白山)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종족적 관계는 여하튼 간에 이 문화가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실체가 바로 단군과 부루(夫婁)라고 본다.

둘째, 이 신화가 삼신(三神)사상의 표현이고 구체적으로는 태양신화와 토테미즘 두 계통의 신화가 섞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즉 신화를 달리하는 두 종족이 정치·사회적으로 통합되면서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융합된 것으로 이해했다.

셋째, 천신족(天神族)인 환웅이 지신족(地神族)인 고마족의 여성과 혼인하여 단군이 출생했다는 것을 설화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기에서는 단군이라는 호칭은 무군(巫君), 즉 제주(祭主)의 의미가 많고, 왕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 군장(君長)의 의의가 강하다고 보아 종교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명칭 상에서 구분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넷째, 신화 또는 토테미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태도를 벗어나 우리 민족 태고의 의식을 보여주는 사실로 파악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단군신화〉의 농경관계 기사를 곡물재배민족의 제의(祭儀)로 파악하고 환웅과 웅녀를 쌍분체제(雙分體制 dual organization)로 간주하여 곰과 범이 한 굴에서 살았다는 내용을 일광금기(日光禁忌)와 탈피(脫皮) 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다.

다섯째, 단군신화에 나타난 곰숭배사상에 주목하여 이 신화내용을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 살고 있던 고아시아족(Paleo Asiatic)과 연결시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논거로 고아시아족의 시조설화에 곰숭배사상이 포함되어 있고 자신들은 곰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었던 점, 최고의 샤먼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와 단군이 어원상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 텡그리의 기능과 관련된 세계목(世界木:고대신화에서 하늘과의 통로로 여겨진 신성한 나무) 관념이 신단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되고 있다.

(2) 민족의 개국신화로 정착되는 과정에 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먼저 원래 고조선의 한 종족신화였던 〈단군신화〉가 대몽항쟁(對蒙抗爭)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에 전체 민족의 신화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서는 단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의 편찬시기가 대몽 항쟁기였던 점, 〈제왕운기〉에서 구월산(九月山)을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아사달 산으로 보고 거기에 사당이 존재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이 무렵부터 단군신화가 민족 전체의 신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조선 세종 때 평양에 사당을 지어 단군을 모신 뒤로는 명실상부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단군신화〉가 처음부터 우리민족의 건국사화(建國史話)로 인식되었다고 보고 있다. 즉 고조선은 이미 서기전 12세기 이전에 북경 근처의 롼허 강[河]서쪽 경계로 하여 동북부는 헤이룽 강[黑龍江]밖까지 이르는 만주일대와 한반도 전 지역을 영토로 하는 동아시아의 대국으로 실재하고 있던 국가이므로 〈단군신화〉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며 따라서 단군은 그 뒤 줄곧 개국시조로 인식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3) 신화에 담겨진 역사적 현실과 그 시기 및 사실성 여부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첫째, 〈단군신화〉가 시대적 변화를 계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즉 1단계에서는 씨족사회에서의 단순한 씨족토템이 생겼고, 2단계에서는 군사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했으며, 3단계에서는 계급국가 형성 뒤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보았다.

둘째, 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고대국가의 성립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에서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풍백·우사·운사·선·악·곡·형 등 360가지 인간사 등의 단어들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여 〈단군신화〉에 나타난 사회가 부권(父權) 중심의 농경사회 내에서 계급분화가 이루어지고 지배자가 등장한 청동기시대 초기라고 보았다. 또한 곰과 호랑이, 환웅과 웅녀의 결혼 등의 내용을 통하여 토템을 믿는 몇 개의 종족이 결합하여 부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셋째, 〈단군신화〉가 포용하고 있는 역사의 시대를 고고학적인 연대와 관련하여 신석기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우리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되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담당자가 고아시아족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단군신화〉의 시대적 성격이 신석기문화와 연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넷째, 〈단군신화〉를 4단계의 역사적 발전단계가 압축된 것으로 보아 무리사회 단계인 환인시대, 부락사회 단계인 환웅시대, 부락연맹체사회 단계인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 국가사회 단계인 단군시대로 보아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 즉 인류사회의 보편적 발전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각 시대를 고고학 자료와 연결시켜 환인시대는 1만 년 이전의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 환웅시대는 1만 년 전 전후부터 6,000여 년 전까지의 전기신석기시대,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는 6,300~4,300여 년 전(서기전 2300경)의 후기신석기시대, 고조선시대는 서기전 2300년경부터 서기전 2세기말까지로 보아 신화의 내용 대부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함께 랴오닝[遼寧] 지역의 풍하문화(豊下文化:夏家店下層文化)가 청동기문화로서 단군의 개국연대와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째, 〈단군신화〉를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견해도 제기되었다. 즉 문헌에 보이는 자료를 토대로 산둥 성[山東省]에 있는 무씨사당(武氏祠堂) 석실 내의 화상석(畵像石)의 그림과 〈단군신화〉의 내용이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하여 이의 전파가 종족 이동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했다. 최근에는 이 견해의 바탕이 되는 무씨사당의 화상석이 단군신화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밖에 단군과 관련된 문헌 중 도가(道家) 계통의 역사서인 〈규원사화 揆園史話〉· 〈환단고기 桓檀古記〉 등을 제시하여 단군조선의 역사가 47대의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실사(實史)였음을 강조한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역사서가 한말과 일제하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해야 하며 어떤 맥락에서든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개국신화를 그대로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한 점이 많다. 어쨌든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고 계속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4) 대종교와 단기 그리고 개천절

일제강점기의 민족의식의 고양과 관련하여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종교로 발전한 것이 대종교(大倧敎)이다. 대종교는 1909년(융희 3) 나철(羅喆)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대종교에서 단군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이던 개천절(開天節)을 8·15해방 후 정부가 정식으로 국경일로 지정했다. 1945년 대한민국정부 수립과 동시에 법령으로 공포되어 사용되던 단기(檀紀)는 고려 말 우왕(禑王)의 사부였던 백문보(白文寶)가 사용한 예에서 처음 보인다. 요즘의 단기는 조선시대의 사서 〈동국통감 東國通鑑〉에서 고조선의 건국을 요 즉위 25년 무진년으로 본 것에 근거하여, 단군 원년을 서기전 2333년으로 정한 것이다. 5·16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가 집권한 뒤인 1962년 1월 1일부터 단기 사용을 중지시키고 공식적으로는 서기(西紀)만을 쓰고 있다.


2. 단군과 단군신화


 2. 단군과 단군신화

단군(檀君)이란 누구신가?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이시며 고조선(古朝鮮)의 첫 임금으로 단군신화(檀君神話)의 주인공이신 어른이라고 한다. 단군왕검(檀君王儉) 또는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고, 환웅(桓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웅녀(熊女)라고 한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에 환국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 만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번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堯를 말함.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庚寅年:당고의 즉위년은 무진년으로 50년 뒤면 정사년이므로 경인년이란 표현은 아마 틀린 듯함)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피홀산(弓忽山:弓자 대신 방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 고려 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그 밖의 다른 기록들도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Ⅰ. 서론 1. 신화란 무엇인가


 1. 신화란 무엇인가

(1) 신화의 의의

신화(神話; myth)란 보통 그 기원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전승에 근거한 이야기(說話)라고 보통 정의된다. 외견상으로는 어떤 관행·신앙·제도·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해 실제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특히 종교의식 및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신화의 전거는 확실히 진술되기보다는 함축적으로 제시된다. 신화들은 일상적인 인간생활과 거리가 멀지만 그 기반이 되는 신이나 초인들의 특정한 사건·조건·행위 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사건들은 역사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점의 상황을 다루며, 주로 우주창조나 선사시대 초기를 그 배경으로 삼는다. 신화는 인간의 행동이나 제도, 우주적 상황에 관한 원형들을 제시해준다. 신화의 특성은 다른 종류의 문학에서도 발견된다. 원인론(原因論)적인 이야기는 자연·인간·사회·삶에 관한 여러 측면의 기원과 원인들을 설명해준다.
옛날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존재·사건들을 다루지만 신화에서와 같은 권위는 없다. 중세의 무용담과 서사시는 권위와 사실성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 족보 없는 이야기에 불과한 일반 설화에 대해 전승에 근거한 신화는 다루는 주제에서도 품격의 차이가 있다.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寶庫)로 여겨지므로 우주를 지배하고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우주창조에 관한 신화는 여러 문화권에서 왕의 정통성 또는 세계의 안녕이 보장되는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야기 된다(우주생성신화). 우주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인간과 사회제도의 기원에 관한 신화가 있다. 종말론적인 신화는 다른 신화들이 영원과 지상에서의 시간관계를 설명하는 데 반해 세계의 종말을 다룬다. 신화는 때로 이 땅에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해준 문화적 영웅들이나 지상적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준 위대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악과 죽음이 어떻게 인간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지식이 어떻게 '잊혀지고' 다시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신화적인 요소는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도 발견된다. 역사적 변증법이 그 궁극에 도달할 때의 국가의 소멸 및 이상적인 생활방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언은 종종 종말론적 신화의 예로 언급되어왔다. 또한 현대 물리학·생물학·의학과 기타 학문들의 패러다임과 모델에서도 신화와 유사한 요소들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2) 신화학

신화학(mythology)이라는 말은 신화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특정의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지닌 신화들의 집대성을 의미한다. 신화에 대한 현대적 연구는 19세기 초 낭만주의 운동과 함께 일어났으나, 신화의 해석 작업은 이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의 영향을 받아 신화를 풍자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에우헤메로스(서기전 300년경 활동)와 같은 역사가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원래는 단순한 영웅이었다고 믿었다. 19세기에 비교언어학이 발달하고 20세기에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학, 즉 신화에 대한 학문의 기본 윤곽이 갖추어졌다. 낭만주의 시대 이래로 모든 신화연구는 비교연구방법론을 이용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받은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를 비롯하여 막스 뮐러, 빌헬름 만하르트, 그리고 제임스 프레이저 경등은 민담과 신화의 주제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있어 비교연구의 접근방법을 썼다. 브로니수아프 말리노프스키는 신화가 일상적인 사회적 기능들을 완수하는 측면을 강조했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를 비롯한 구조주의자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신화들의 형식적인 관계와 유형을 비교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상징적 의사소통이란 문화의 역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작용에도 기반을 둔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초역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간관과 함께 신화를 억압된 관념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를 제기했던 것이다. 카를 융은 이러한 초역사적·심리학적 접근을 보다 확장시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이론을 주장했고 신화에 암시되어 있는 집단무의식과 원형들을 연구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와 종교사가인 미르케아 엘리아데와 같은 학자들은 종교는 종교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해야 하며 비종교적인 범주로 환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위 '신화 및 의식(儀式) 학파'(Myth and Ritual School) 학자들은 모든 신화가 그에 상응하는 의식(儀式)에 대한 '해명'으로 작용하거나 이미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신화와 의식 사이에 흔히 어떤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중 어느 것이 우선이었는지는 결코 단언할 수 없다. 신화를 수반하지 않는 의식은 있을 수 없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차적인 의식조차 없는 신화는 있다.

(3) 우리나라의 신화

한국의 신화는 건국신화·성씨시조신화·마을신화·무속신화로 나눌 수 있다. 건국신화는 나라를 세운 시조에 대한 신화이다. 고조선은 〈단군신화〉가 있고, 고구려는 〈동명왕신화〉, 신라는 〈혁거세신화〉·〈석탈해신화〉·〈김알지신화〉가 있으며, 가야는 〈김수로왕신화〉가 있다. 북부여 및 동부여와 관련된 〈금와신화〉의 내용도 일부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들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사기〉 등에는 주몽·혁거세·석탈해 등의 신화만 전하고 다른 자료에 일부 신화 내용이 전한다. 〈탐라지〉 등에 전하는 제주도의 〈삼성신화〉는 지금은 고·양·부 3성의 시조신화로 남아 있으나 건국신화의 흔적이 엿보인다. 고려의 건국신화는 〈고려사〉에, 조선의 건국신화는 〈용비어천가〉에 전하나, 이들 신화는 신화시대 이후의 것이어서 인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태봉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에 대한 신화는 두 인물이 세운 나라가 일찍 망하면서 곧 전설화되었다. 건국신화는 대개 국가시조신에 대한 제의에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화의 주인공이 실존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건국신화는 3대기(三代記)적 서술(〈단군신화〉·〈동명왕신화〉), 천부지모(天父地母:〈단군신화〉) 또는 천부수모(天父水母:〈동명왕신화〉·〈혁거세신화〉·〈김수로왕신화〉)적 사상, 그리고 난생신화(〈동명왕신화〉·〈혁거세신화〉·〈수로왕신화〉)적인 특징이 있다.
성씨시조신화는 각 성의 시조에 대한 신화이다. 조상신에 대한 신화인 제주도의 조상본풀이들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마을신화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 대한 신화이다. 〈죽령산신 다자구할머니〉·〈일월산 황씨부인〉·〈연평도 임경업장군〉 등의 신화가 알려져 있는데, 제주도의 본향당신본풀이들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의 신화들 또한 세계에 보편적으로 전하는 신화인 〈천지창조신화〉·〈인간탄생신화〉·〈사후세계신화〉·〈농경기원신화〉등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어쨌든, 수많은 우리나라의 신화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봉 격으로 꼽으라면 역시 ‘단군신화’일 것이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이기도 하지만, 우리민족의 뿌리를 말해주는 민족기원신화다. 이 글에서는 단군신화를 한번 분석해 보고자 한다. 에우로메스의 말대로 결국 대부분의 신화가 실제 있었던 사실의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단군신화 속에서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