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0일 수요일

2. 단군과 단군신화


 2. 단군과 단군신화

단군(檀君)이란 누구신가?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이시며 고조선(古朝鮮)의 첫 임금으로 단군신화(檀君神話)의 주인공이신 어른이라고 한다. 단군왕검(檀君王儉) 또는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고, 환웅(桓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웅녀(熊女)라고 한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에 환국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 만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번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堯를 말함.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庚寅年:당고의 즉위년은 무진년으로 50년 뒤면 정사년이므로 경인년이란 표현은 아마 틀린 듯함)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피홀산(弓忽山:弓자 대신 방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 고려 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그 밖의 다른 기록들도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댓글 2개:

  1. 《魏書》云: 「乃往二千載有, 立都(《經》云, 亦云, 在地, 或云在東, 今是), 開國號, 與同時. 古記云: 「昔有(謂也)庶子,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率徒三千, 降於頂(卽今)神壇樹下, 謂之, 是謂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 願化爲人. 時, 神遺靈艾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以卽位五十年庚寅(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今), 始稱. 又移都於, 又名, 又, 御國一千五百年. 卽位己卯, 封於, 乃移於, 後還隱於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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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에서 '弓忽山'은 대개 알려진 대로 '궁홀산'이 아니라 '피홀산'이라고 읽어야 한다. 활 궁(弓)자가 아니라고 본다.『설문해자』에 ‘弓’자의 모양을 한 글자가 3개가 있다. 먼저 하늘 ‘피’자로「编号:4472 米部 弓 bei4 乾也。从米䰈聲。平祕切」로 ‘乾’이란 뜻으로 ‘피’로 읽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乾’을 ‘하늘’로 해석한 것 또한『설문해자』를 따름이다(「编号:9692 乙部 乾 qian2/gan1 上出也。从乙,乙,物之達也;倝聲。渠焉切 古寒切」,「乙部 乙 yi3 象春艸木冤曲而出,陰气尚彊,其出乙乙也。與丨同意。乙承甲,象人頸。凡乙之屬皆从乙。於筆切」이라 했다. 그리고 뚫을 ‘丨(곤)’은 「编号:230 丨部丨gun3 上下通也。引而上行讀若囟,引而下行讀若蓆。凡丨之屬皆从丨。古本切」이라 했으니 이는 곧 ‘솟대’이다. 그리하여 주역에서 ‘乾’괘에 하늘과 임금의 의미가 들어간 것 일게다. 그리고 ‘方’자로 바꿔 쓸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도 바로 이 ‘피’자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 方部 方 fang1/fang2/pang2 併船也。象兩舟省、緫頭形。凡方之屬皆从方。府良切 」)
    다음으로는 묘할 ‘매’자로 「编号:5047 人部 ⼸ wei2 妙也。从人从攴,豈省聲。無非切」 라고 나와 있다.
    활을 뜻하는 궁(弓)자는 다음과 같이 글자모양은 같지만 다른 부수의 다른 글자로 되어있다. 「编号:8434 弓部 弓 gong1 以近窮遠。象形。古者揮作弓。《周禮》六弓:王弓、弧弓以射甲革甚質;夾弓、庾弓以射干矦鳥獸;唐弓、大弓以授學射者。凡弓之屬皆从弓。居戎切」
    이런 글자는 ‘士’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선비 ‘사’자는 「编号:226 士部 士 shi4 事也。數始於一,終於十。从一从十。孔子曰:“推十合一爲士。”凡士之屬皆从士。鉏里切」로 되어있고, 벼 ‘멸’자는「编号:4364 禾部 士 mie4 禾也。从禾蔑聲。莫結切」로 되어 있다.
    이는 다른 부수들에서 비롯된 글자이므로 이른바 전주(轉注) 문자로 볼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전국시대에 각 나라에서 쓰였던 다른 부수에서 나왔으나 같은 모양을 가진 글자가 있었음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문자통일이 진시황의 대표적인 업적의 하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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