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단군신화의 해석론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상 등장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관한 것인 만큼 오늘날에는 민족 전체의 국조신화로 여겨지고 있으며 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다. 신화란 원래 당시의 현실 속에서 고대인이 경험한 것을 객관화시켜 형성된 관념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사회적 의식형태의 하나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전하는 신화는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완전한 형태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역사발전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화도 오랜 세월 변천을 거듭하여 내용의 일부가 소멸하기도 하고 첨가되기도 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는 신화의 내용을 허구로 인식하여 〈단군신화〉와 관련된 고조선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견해로부터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를 관점의 차이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1)〈단군신화〉의 생성과정과 주인공에 관한 학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견해이다. 중앙아시아로부터 한반도와 일본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사상 중심의 신앙과 사회조직을 가지는 종족들이 백산(白山)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종족적 관계는 여하튼 간에 이 문화가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실체가 바로 단군과 부루(夫婁)라고 본다.
둘째, 이 신화가 삼신(三神)사상의 표현이고 구체적으로는 태양신화와 토테미즘 두 계통의 신화가 섞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즉 신화를 달리하는 두 종족이 정치·사회적으로 통합되면서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융합된 것으로 이해했다.
셋째, 천신족(天神族)인 환웅이 지신족(地神族)인 고마족의 여성과 혼인하여 단군이 출생했다는 것을 설화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기에서는 단군이라는 호칭은 무군(巫君), 즉 제주(祭主)의 의미가 많고, 왕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 군장(君長)의 의의가 강하다고 보아 종교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명칭 상에서 구분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넷째, 신화 또는 토테미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태도를 벗어나 우리 민족 태고의 의식을 보여주는 사실로 파악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단군신화〉의 농경관계 기사를 곡물재배민족의 제의(祭儀)로 파악하고 환웅과 웅녀를 쌍분체제(雙分體制 dual organization)로 간주하여 곰과 범이 한 굴에서 살았다는 내용을 일광금기(日光禁忌)와 탈피(脫皮) 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다.
다섯째, 단군신화에 나타난 곰숭배사상에 주목하여 이 신화내용을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 살고 있던 고아시아족(Paleo Asiatic)과 연결시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논거로 고아시아족의 시조설화에 곰숭배사상이 포함되어 있고 자신들은 곰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었던 점, 최고의 샤먼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와 단군이 어원상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 텡그리의 기능과 관련된 세계목(世界木:고대신화에서 하늘과의 통로로 여겨진 신성한 나무) 관념이 신단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되고 있다.
(2) 민족의 개국신화로 정착되는 과정에 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먼저 원래 고조선의 한 종족신화였던 〈단군신화〉가 대몽항쟁(對蒙抗爭)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에 전체 민족의 신화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서는 단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의 편찬시기가 대몽 항쟁기였던 점, 〈제왕운기〉에서 구월산(九月山)을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아사달 산으로 보고 거기에 사당이 존재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이 무렵부터 단군신화가 민족 전체의 신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조선 세종 때 평양에 사당을 지어 단군을 모신 뒤로는 명실상부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단군신화〉가 처음부터 우리민족의 건국사화(建國史話)로 인식되었다고 보고 있다. 즉 고조선은 이미 서기전 12세기 이전에 북경 근처의 롼허 강[河]서쪽 경계로 하여 동북부는 헤이룽 강[黑龍江]밖까지 이르는 만주일대와 한반도 전 지역을 영토로 하는 동아시아의 대국으로 실재하고 있던 국가이므로 〈단군신화〉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며 따라서 단군은 그 뒤 줄곧 개국시조로 인식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3) 신화에 담겨진 역사적 현실과 그 시기 및 사실성 여부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첫째, 〈단군신화〉가 시대적 변화를 계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즉 1단계에서는 씨족사회에서의 단순한 씨족토템이 생겼고, 2단계에서는 군사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했으며, 3단계에서는 계급국가 형성 뒤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보았다.
둘째, 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고대국가의 성립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에서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풍백·우사·운사·선·악·곡·형 등 360가지 인간사 등의 단어들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여 〈단군신화〉에 나타난 사회가 부권(父權) 중심의 농경사회 내에서 계급분화가 이루어지고 지배자가 등장한 청동기시대 초기라고 보았다. 또한 곰과 호랑이, 환웅과 웅녀의 결혼 등의 내용을 통하여 토템을 믿는 몇 개의 종족이 결합하여 부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셋째, 〈단군신화〉가 포용하고 있는 역사의 시대를 고고학적인 연대와 관련하여 신석기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우리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되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담당자가 고아시아족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단군신화〉의 시대적 성격이 신석기문화와 연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넷째, 〈단군신화〉를 4단계의 역사적 발전단계가 압축된 것으로 보아 무리사회 단계인 환인시대, 부락사회 단계인 환웅시대, 부락연맹체사회 단계인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 국가사회 단계인 단군시대로 보아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 즉 인류사회의 보편적 발전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각 시대를 고고학 자료와 연결시켜 환인시대는 1만 년 이전의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 환웅시대는 1만 년 전 전후부터 6,000여 년 전까지의 전기신석기시대,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는 6,300~4,300여 년 전(서기전 2300경)의 후기신석기시대, 고조선시대는 서기전 2300년경부터 서기전 2세기말까지로 보아 신화의 내용 대부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함께 랴오닝[遼寧] 지역의 풍하문화(豊下文化:夏家店下層文化)가 청동기문화로서 단군의 개국연대와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째, 〈단군신화〉를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견해도 제기되었다. 즉 문헌에 보이는 자료를 토대로 산둥 성[山東省]에 있는 무씨사당(武氏祠堂) 석실 내의 화상석(畵像石)의 그림과 〈단군신화〉의 내용이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하여 이의 전파가 종족 이동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했다. 최근에는 이 견해의 바탕이 되는 무씨사당의 화상석이 단군신화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밖에 단군과 관련된 문헌 중 도가(道家) 계통의 역사서인 〈규원사화 揆園史話〉· 〈환단고기 桓檀古記〉 등을 제시하여 단군조선의 역사가 47대의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실사(實史)였음을 강조한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역사서가 한말과 일제하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해야 하며 어떤 맥락에서든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개국신화를 그대로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한 점이 많다. 어쨌든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고 계속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4) 대종교와 단기 그리고 개천절
일제강점기의 민족의식의 고양과 관련하여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종교로 발전한 것이 대종교(大倧敎)이다. 대종교는 1909년(융희 3) 나철(羅喆)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대종교에서 단군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이던 개천절(開天節)을 8·15해방 후 정부가 정식으로 국경일로 지정했다. 1945년 대한민국정부 수립과 동시에 법령으로 공포되어 사용되던 단기(檀紀)는 고려 말 우왕(禑王)의 사부였던 백문보(白文寶)가 사용한 예에서 처음 보인다. 요즘의 단기는 조선시대의 사서 〈동국통감 東國通鑑〉에서 고조선의 건국을 요 즉위 25년 무진년으로 본 것에 근거하여, 단군 원년을 서기전 2333년으로 정한 것이다. 5·16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가 집권한 뒤인 1962년 1월 1일부터 단기 사용을 중지시키고 공식적으로는 서기(西紀)만을 쓰고 있다.
不咸文化論
답글삭제일제강점기 최남선(崔南善)이 문화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 고대문화의 위치를 밝히고자 집필한 사론.
1928년 〈조선급조선민족 朝鮮及朝鮮民族〉 제1호에 실렸다. 부제는 〈조선을 통하여 보는 동방문화의 연원과 단군(檀君)을 계기로 한 인류문화의 일부면(一部面)〉이다. 최남선은 일본 관학자들의 단군말살론, 일선동조론, 문화적 독창성 결여론 등에 자극받아 1920년 〈단군급기연구 檀君及其硏究〉를 발표한 이래 〈단군론 檀君論〉·〈아시조선 兒時朝鮮〉 등 단군·고대사에 관한 글로써 '조선정신'의 원류를 밝히고자 했다. 이런 배경 위에 언어학·민속학·신화학 등을 이용하여 한국 고대문화의 독자성을 규명하려고 한 것이 '불함문화론'이다.
최남선은 동방문화의 원류로 '빠'[Park] 사상을 주목했다. 이 'Park'의 가장 오랜 문자형을 '불함'이라 하여 빠를 숭상하던 모든 문화권을 불함문화권으로 규정했다. 특히 조선은 불함문화의 중심인데, 그 증거로 태백산(太白山)·소백산(小白山) 등 전국 각지의 '백'(白)자가 들어간 지명이 유달리 많다는 것을 들고 있다. 최남선에 따르면, '백'은 'Park'의 대자(對字)로서 신·하늘·해를 뜻하는 고어이며, 태양신 숭배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이족(東夷族) 지명에 많이 보이는 '백산'(白山)은 태양신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의 의미이며, 그중 태백산은 가장 중심된 곳이고 단군을 "천(天)을 대표하는 군사(軍師)의 호칭"으로 보았다. 최남선은 이에 근거하여 한반도 주변지역의 지명들을 분석, 서(西)로는 흑해(黑海)로부터 동(東)으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광대한 지역이 모두 불함문화권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불함문화권은 중국·인도의 남계(南系) 동방문화에 대해 북계(北系) 동방문화를 대표하며, 이를 통해 일본 고대문화에 포함된 한국 및 중국 문화의 형성에 미친 동이족 문화의 영향의 실체 파악이 가능하다고 인식했다. 즉 고대 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동해온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모두 집결하고 화합해서 동방문화의 대표국이 되었고, 그 근원을 단군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사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문화만을 가지고 접근하여 정신으로서 이 모두를 포섭하려는 관념적 문화주의에 머물러, 결국 우리의 민족적 역량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우리 민족성의 결함만을 찾으려 함으로써 패배적 민족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