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환인의 분석
1. 환인의 의의
환인(桓因)은 단군신화 등에 나오는 하늘의 신이라고 한다. 환웅(桓雄)의 아버지이며 단군(檀君)의 할아버지이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 古記〉에 의하면 아들 환웅이 늘 인간 세상에 뜻을 두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므로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환인이라는 명칭이 불교의 용어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현재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음과 같이 나는 이 같은 견해를 따를 수 없다.
‘환인이라는 명칭은 원래 산스크리트 '제환인타라'(提桓因陀羅:'天帝')에서 차용한 말이다.’라고 하나, ‘제환인타라’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소개하지 않아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一然)도 환인은 제석(帝釋)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를 달았다.’라고 설명하나, 삼국유사 원문에는 범어에서 유래되어 제석이라는 설명의 주를 단 것이 아니라 그냥 제석을 뜻한다고만 되어있다. 더군다나 ‘桓因’이 아니고 ‘桓國’으로 되어있다.. 과연 원문을 자세히 보고 말한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처럼 환인이라는 명칭은 불교가 전래한 뒤에 수식된 것이나 원래의 신화에 전혀 없던 것이 가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하늘[天] 또는 태양을 숭배하던 사상에서 출발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적인 표현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이처럼 전제(前提)가 틀렸으니 결국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반대로, 불교에서 다음의 견해와 같이 제석을 원래 우리에서 비롯된 표현을 빌어서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제석신(帝釋神)은 지금 민간신앙 가신(家神)의 하나로 되어있다. 제석천(帝釋天)은 본래 불교에서 수미산(須彌山)의 정상(頂上)인 도리천(忉利天)을 주재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아수라(阿修羅)의 군대를 징벌하는 신이다. 이 제석천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환인(桓因), 즉 재래의 하늘님 신앙과 만나 토속화된 것이다. 그러나 불가에서 이 제석천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제석도량(帝釋道場) 등에서 본래 신중(神衆)으로서 신앙되기도 했다. 또 사찰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승려들이 재미(齋米)를 들고 미고(米庫)에 가서 석제환인위(釋提桓因位)라는 위패 앞에 삼배(三拜)를 한다는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의 기록이 있다. 이는 환인이라는 재래의 천신(天神)이 농경문화 속에서 농경신(農耕神)화되었고, 이것이 다시 불교의 유입 이후 불교 제석신이라는 명칭으로 전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제석은 민간신앙 안에서 가신의 하나로서 산신(産神)인 삼신(三神)과 혼융적(混融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때로는 삼불제석(三佛帝釋)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삼신과 삼불제석의 기원을 밝히는 무가(巫歌)의 하나인 〈제석본풀이〉에서 잘 드러난다. 제석은 이처럼 민간신앙에서 농작물의 결실 및 수복(壽福)과 연관된 복합적 기능의 신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가신으로서의 제석은 안택(安宅)이나 굿에서 모셔지는데, 신체(神體)는 제석단지·시준단지라고 불리며, 흰 항아리에 쌀을 담아 다락이나 부엌에 안치한다. 무녀가 제석굿을 진행할 때는 흰 장삼과 고깔을 쓰고 염주를 걸며, 흰 부채를 들고 중타령 등의 무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제물(祭物)로는 고기류를 일체 쓰지 않고 곡물로 만든 백설기를 바친다.
따라서, 환인이 산스크리트 '제환인타라'(提桓因陀羅:'天帝')에서 차용한 말이라는 견해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이런 말은 마치 학부형에게 “자제분 닮으셨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의 망발(妄發)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것이다.
삼위태백을 나는 높은 3개의 태백산으로, 백두산, 아라라트산, 한탱그리봉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세한 것은 나의 글 ‘신 한단고기’ 참조.
답글삭제천부인 3개를 일본의 3종신기와 연결시켜 거울과 방울, 곡옥 등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스리는 자의 상징인 ‘印’에 주목하여 삼한(三韓)을 삼한의 한의 세 명의 왕(三韓各三王)으로 본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견해를 따른다. 신채호 할아버님도 "건륭황제 가로되,'삼한(三韓)은 삼한(三汗)이요 삼한제국(三韓諸國)의 비리(卑離)는 곧 貝勒(패리)이니, 한(韓)이 패리(貝勒)를 통솔함은 동방제국(東方諸國)의 체례(體例)가 그러하다'하였으니 이 풀이가 가장 이세(理勢)에 합당하다 하노라. 신라에 거서간(居西干)·각간(角干) 등의 칭호가 있고 고구려와 백제에 가한(可汗) 등 신(神)에 대한 제례(祭禮)가 유(有)하니, 우리 고대에 '한(汗)'이란 관명(官名)이 있던 증거라, 고구려 때는 전국을 삼경(三京)에 나누고 경(京)마다 '한(汗)'을 두었기에 … [중략] … 진번(眞番)은 곧 진변(辰卞)이요, 三韓(삼한)은 곧 三汗(삼한)이요, 三汗(삼한)은 곧 三京(삼경) 장관(長官)의 이름이니 원(元) 태조(太祖) 성길사한(成吉思汗)의 분봉(分封)한 사한국(四汗國)의 사한(四汗) 같은 자일 것이라, 모두 후세의 창조한 국명(國名)들이 아니라 하노라[신채호,『註解 朝鮮上古文化史』(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 1994)]."라고 말씀하셨다.
답글삭제그런데, 불교의 삼법인(三法印) 쯤으로 해석하면 편하기는 하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용옥 선생님조차 이 견해를 따르고 계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급하신 삼국유사 전체에서 환인(桓因)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언급하신 ‘석가제파인다라’에서 ‘제파(提婆)를 슬그머니 제환(帝桓)’으로 바꾸시고는 데바(deva)와 연결하시고 계신다. 선생님까지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국수주의를 경계하시는 선생님의 뜻은 알겠으나 국수주의가 무섭다고 김치가 기무치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답글삭제그리고, 약간 다른 이야기 이지만, 선생님의 책 83쪽에 나와 있는 인드라(Indra)신은 바루나(Varuna)신과 대결하는 구도라고 하신 말씀은 오류가 있어 보인다. 인드라신은 크리슈나라는 다른 신(비슈누 신의 8번째 아바타라[化現]로 숭배되기도 한다.)과 대립관계에 있다고 고대 전설 모음집인〈푸라나 Puras〉에 나와 있다. 이른바 베다시대에는 바루나신이 최고신으로 숭상 받았고, 그 외의 시대에서는 인드라신이 숭상 받아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고 따라서 ‘인드라는 브라만계급을 대변하고 바루나는 크샤트리아계급을 대변하는 것이다.’라고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따라서 베다시대는 곧 중세에 교황과 세속왕의 투쟁에서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던 시절과 비교하면 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크샤트리아 계급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루나신은 미트라(mitra)신과 협력하는 관계로서 미트라는 신들의 통치권 가운데 사법적인 측면,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반면, 바루나는 마법적이고 정신적인 측면, 즉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오히려 바루나신이 브라만계급을 대변하고 미트라신은 크샤트리아 계급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럼으로 차라리 베다시절에는 인드라신이 바루나신 이었고 이것은 곧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이다.
아마도 선생님이 참조하신 문헌의 오류를 무심결에 그대로 언급하신 것은 아닌가 한다.
김용옥,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1 (서울: 통나무, 2002』, 82쪽~84쪽 참조.
‘제환인다라’는 ‘제환Indra'로 인드라신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해당하는 신 인드라 석자라도 명기를 해서 이런 견해를 밝혀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조차 모르고 망발을 일삼은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인드라를 알더라도 앞의 ‘提桓’에 해당하는 범어를 몰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석제환인도 석가제파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를 줄인 말이고 산스크리트 원어는 ‘샤크라-데바남 인드라(Sakra-Devanam Indra)’이다.
답글삭제위의 책, 82쪽 참조.
Indra
인도에서 베다의 신들 가운데 최고신.
전형적인 아리아인의 신으로서 호전적인 이 신은 자신의 적인 무수한 인간들과 악마들을 무찔렀고 태양을 항복시켰으며, 계절풍이 뚫고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용 브리트라를 죽였다.
그의 무기는 천둥과 번개이며, 그는 제사 때 바치는 영약 소마 즙을 마시고 강해져서 이러한 위업을 이루었다. 그와 동맹한 신들로는 구름을 타고 폭풍을 몰고 다니는 루드라(또는 마루트), 쌍둥이 신으로 말을 잘 모는 아슈빈, 후에 힌두교의 주요 3신의 하나가 된 비슈누 등이 있다. 후기의 힌두교에서 인드라는 비의 신이며 하늘의 섭정, 동방의 보호자라는 역할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고대 전설 모음집인 〈푸라나 Puras〉에는 크리슈나와 인드라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크리슈나가 브라자(지금의 우타르프라데시에 있음)에서 소 치는 사람들에게 인드라를 숭배하지 말라고 설득하자 화가 난 인드라가 비를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손가락 끝으로 고바르다나 산을 들어 올려 사람들에게 그 아래로 비를 피하게 했고, 이렇게 7일이 지나자 결국 인드라는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크리슈나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인드라는 〈마하바라타 Mahbhrata〉에 나오는 전쟁의 영웅 아르주나의 아버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몸 전체에 1,000개의 눈과 비슷한 표식(실제로는 요니, 즉 女陰像)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가끔 '1,000개의 눈을 가진 자'라고도 불린다. 이 표식은 그가 어느 현인의 아내를 유혹했기 때문에 그의 저주를 받아 생긴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에서 그는 흔히 아이라바타라고 하는 흰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드라는 인도의 자이나교와 불교의 신화에도 나온다. 신들의 우두머리인 그는 자이나교의 성자 마하비라가 세상과 결별하는 의미에서 머리를 깎았을 때 그것을 두 손에 받아들었다.
「古記云: 「昔有(謂也))」 이라고 되어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훼괴한 말이 나왔는지 뻔히 짐작할 만하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제석을 이름이다.)’라는 내용밖에는 없다. 더군다나 ‘桓國’을 일본 식민지 시절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를 식민사관에 입각해서 편찬하면서 ‘桓因’이라고 임의로 개찬한 사실을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적하여 항의한 것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던 사실이 있었음을 알아야만 한다. 아직까지도 이런 식민사관에 찌든 흔적이 남아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내용이 백과사전에 까지 버젓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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